27호 두 번은 없다, 이런 여름은 - 미리 쓰는 여름 일기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계절이면, 내게는 꼭 한 번 그런 저녁이 찾아온다.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올 때나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고개를 돌릴 때, 문득 ‘아,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왔구나.’ 깨닫는 그해의 첫 저녁이. —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중에서

글·사진 김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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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름을 알리는 바람이 불 때면

이렇게 시작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여름에 대한 편애를 그러담아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니 앞으로 여름에 대해 더 할 말이 있을까 싶었다. 그건 매년 다른 여름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고서 한 생각이었다. 다시 여름이 오자 이야기는 달처럼 차오른다.

낮이 점점 길어지고, 퇴근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에 아직도 빛이 많이 남아 있으면 여름이 오는구나 싶어진다. 여섯 시에 퇴근해도 바깥이 어둑한 겨울엔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지만, 여름엔 회사 문을 나서면서도 마음이 느긋하다. 남아 있는 해를 보며 ‘이제부터 뭘 할까?’ 생각할 수 있어 즐겁다.며칠 전 퇴근길엔 친구와 이전에 한 번 가본 적 있는 태국 식당을 찾아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바람이 좋은 저녁이었다.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마다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서 저녁 손님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일찍 퇴근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야외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첫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짠!’ 하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아무것도 아닌 그 풍경에 괜히 가슴이 설렜다.

함께 걷는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다들 바깥 자리를 탐내는 계절이 왔어! 친구도 골목길을 휘휘 둘러보며 대답했다. 그러네, 그러다 금세 또 가버릴 텐데 말이야. 응, 그러니까 부지런해져야지. 바깥 자리 남아 있으면 꼭 밖에 앉자! 우리는 곧 도착할 식당에 좋아하는 자리가 남아 있길 바라며 총총걸음을 재촉했다.

무엇에든 제철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철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제철 풍경도 있고 제철에 해야 가장 좋은 일도 있다. 여름은 바야흐로 야외 맥주가 제철인 계절이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친구네 집 옥상에서, 한강 잔디밭에서, 개천 징검다리 옆에서, 이제 막 문을 연 술집 테라스 자리에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일 때 비로소 이 계절을 만끽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사전에서는 제철을 ‘알맞은 시절’이라 풀어쓴다. 알맞은 시절. 그것을 알아차리라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람은 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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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가 여름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작년 이맘때 무척 즐겨 찾던 맥줏집이 있다. 회사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에 있어서, 일찍 퇴근한 날이면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던 곳. 그 집에서도 나란히 바깥을 향해 앉을 수 있는 창가 자리를 제일 좋아했다. 그 자리에 앉아 해가 질 때까지 시속 한 잔의 속도로 맥주를 마시는 것만큼 근사한 일은 없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다시 제철을 맞아 그곳을 찾았을 땐, 골목길이 어딘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와서인가 의아해하다가 좋아하던 자리에 앉고 나서야 뭐가 달라졌는지 깨달았다.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던 나무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 자리를 좋아했던 건 돌담 위로 비치는 나무 그림자를 볼 수 있어서이기도 했다. 오후 서너 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빛이 기우는 정도에 따라 그림자가 계속 바뀌었다. 그건 꼭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뿌리째 뽑힌 나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어딘가로 옮겨지긴 했을까? 함께 간 친구들에게 지난해만 해도 이 앞에 나무가 있었다는 얘길 해주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저 담벼락 위로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얼마나 근사했었는지도. 그 풍경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도 같은 마음으로 아쉬워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지난해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 속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나무들이 담겨 있었다. 담벼락 위로 비친 나무 그림자도. 사진을 찍어두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지금은 곁에 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를 것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건 풍경에게도, 시간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원래’ 있는 것은, ‘그냥’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라진 뒤에야 아쉬워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거기 있어주는 것들에 고마워하는 사람이 되려고 나는 자꾸 기록하게 된다. ‘지금’을 담아두고 기억해두고 싶다. 내년의 여름은 올해와 같지 않을 테니까.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혹은 이곳이 내년에도 여기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모든 것은 한 번뿐이다, 라고 여기는 것과 두 번은 없다, 고 여기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한 번뿐이라는 마음엔 어쩌면 한 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숨어 있다. 그러나 두 번은 없다 여기는 마음은, ‘어쩌면’ 같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바라는 것은 다만, 지금을 겪는 일. 두 번은 없는 현재를 사라지기 전에 바라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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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창밖으로 아까운 계절이 흐르는 것이 보여 자꾸 집 밖을 나선다. 그제는 근교 카페에 갔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낯선 외곽도로 위를 차를 타고 달리는데, 열어놓은 차창으로 여름밤의 시원한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불 켜진 가로등이 우리 옆을 계속 스쳐 지났다. 밤길을 거슬러 달리는 아주 키 큰 사람처럼. 

라디오에선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밤의 드라이브에 어울리는 근사한 목소리였다. 노래가 끝나고 디제이가 제목을 얘기해주면 기억해두어야지 했는데 노래가 끝난 후 바로 광고가 이어져서 알 수 없었다. 가사를 기억한다면 검색해서 찾을 수 있을 텐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가사도 멜로디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 노래를 들으며 창을 열어두고 달리던 밤이 좋았다는 것만 기억난다. 차가 긴 터널로 접어들 무렵, 운전하던 K가 문득 말했다. “이상하지. 가끔씩 내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이런 평화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

K는 좀처럼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나는 가만 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으려다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집에 가면 그에게 이 시를 읽어주고 싶었다. 두 번은 없다 말하는 시.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시. 함께 기억하고 싶은 마지막 연을 읽고 나서, 이번 여름은 무얼 하며 지낼지 얘기를 나누다 잠들고 싶었다. 이런 여름은 두 번은 없을 테니까.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 여름에도 겨울에도 / 낙제란 없는 법.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 두 번의 같은 입맞춤도 없고, /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 (중략) //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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