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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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약간의 거리를 두면 보이는 것들 - 수원 팔색길 두 번째 여우길 여행1

초여름에 우리는 사찰과 숲에 있었다. 그곳에 머물며 많이 보고 또 많이 말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말하면 말할수록 나는 아주 작은 우물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왜였을까? 평온한 것들 사이에서 나는 왜 조급해진 걸까?
글·사진 김건태

첫 번째 여행 | 봉녕사
진짜 흔들리는 건 무엇인가요
사찰에 가자고 친구가 말했을 때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자고 대답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마지막으로 교회에 갔던 게 언제였는지 세고 있었다. 집사님인 엄니의 얼굴도 동시에 떠올렸다. 아무렴 어때. 모태신앙인 내가 사찰에 큰 거부감이 없어진 건 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다. 대학 시절의 나는 비용이 저렴한 동남아시아 쪽으로만 배낭여행을 다녔고, 그 나라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불교를 믿었다. 시간 많고 돈 없는 내가 사찰을 산책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종교는 종교요, 건축은 건축이며, 문화는 문화라는 걸 구분 지어 판단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 머릿속의 사찰은 고요하고 청빈하며 바람이 풍경을 울리는 여유로움 그 자체가 됐다.
봉녕사는 원천저수지와 광교저수지를 숲으로 잇는 ‘여우골숲길’ 인근에 있었다. 나는 최소한의 예의로 봉녕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들의 역사를 읽었다. 요약하자면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 고려 시대의 원각국사라는 유명한 분이 절을 만들고, 훗날 비구니 묘전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며, 비구니 승가대학(여자 스님을 교육하는 곳)을 세운 수원의 대표적인 사찰’이라는 것이다.
승가대학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봉녕사의 첫인상은 대학교 캠퍼스를 연상케 했다. 잘 정돈된 잔디와 과하지 않은 조경, 작은 연못과 세련된 건물 마감재까지. 음식으로 치자면 울퉁불퉁 손두부가 아니라 네모반듯한 플라스틱 패키지에 담긴 풀무원 두부의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두부는 어떤 모양이든 두부이기 마련이듯, 봉녕사 역시 그 나름의 담백함이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이 절은 빨간색이 많지 않아서 좋아.” 경내를 둘러보던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의 직관적이고 단순한 평가를 들으며 하얀 순두부 위에 얹은 양념장을 상상했다. 그러고 보니 봉녕사는 기둥과 지붕 사이의 녹색 단청이 유난히 화려하고 또렷한 모양이었다. 마침 봉녕사의 템플스테이를 담당하는 혜명거사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사찰이 화려한 이유는 과거 왕이 되지 못한 왕자들이 궁을 떠나 사찰에 머물렀기 때문이고, 왕족이 머무는곳이니 궁과 버금가는 장식은 기본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왕이 되지 못해 머리를 깎은 왕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권력이란 어찌 이리도 극단적인가 생각했다. 1등이 아니면 머리를 기를 수도 없는 세상이라니.

봉녕사의 본당 대적광전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있는데, 비로자나 부처님을 중심으로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좌우로 모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수많은 보살과 무서운 얼굴을 한 천왕의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나는 불교에 무지한 탓에 문득 궁금해졌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라고 했는데, 절에는 수많은 부처가 있으며 우리 역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산에 사는 옛날 사람들은 호랑이를 신령으로 믿었으며, 인도 사람들은 소를 신으로 숭배했다. 나는 인도 영화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를 생각했다. 인도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수많은 종교를 경험하며 진정한 신은 어디에 있는가, 묻는 내용이었다. 진짜 신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는 그 물음에 답을 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생각할 만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신이 단 한 명이라지만 제가 보기에는 두 명이에요. 우릴 만든 신과 인간이 만든 신. 인간이 만든 신은 편협하고, 뒷돈을 받고, 헛된 약속을 하죠. 부자는 잘 만나주지만 가난한 사람은 기다리게 해요. 제가 믿는 신은 바로 우릴 만든 신이에요.” 그러니까 종교란 신 자체가 목적이 아닌,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을 바라보게 하는 삶의 한 방식이 아닐까 하는 물음말이다.
내가 이런저런 고뇌에 갇혀 미간을 잔뜩 구기는 동안, 친구는 지장보살 석상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누군가 석상 앞 작은 제단에 음식을 놓아두었는데 까치가 음식을 물어가면 참새가 날아오고, 그의 차례가 끝나면 쥐가 다녀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조금씩 음식을 나눠 먹기로 약속한 것처럼 제 순서를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친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나의 질문에는 누가 답해줄 수 있을까? 불가해한 물음들 앞에서 나는 깊이 무기력해졌다.
그때 마침 멀리서 온 바람이 봉녕사 마당에 불었고, 풍경이 제 몸을 때리며 길게 울었다. “그런데 말이야.” 걸으며 내가 말했다. “풍경과 바람, 마음 중에 진짜 흔들리는 건 무얼까?” 친구는 말이 없었다. 풍경과 바람과 마음. 나는 보잘것없는 두 음절의 단어들을 입속에서 굴려보았다. 그러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두 번째 여행 | 여우골숲길
숲에서는 숲을 볼 수 없고
여우골숲길은 말 그대로 여우길의 메인 테마에 해당하는 산책로로, 봉녕사부터 원천저수지까지 4킬로미터 정도의 숲길을 말한다. 우리는 숲길 도입부의 계단을 올라 완만하게 정돈된 길을 걸었다. 멀리 봉녕사가 보이는 정자에 앉았고, 땀을 닦았고, 조금 전 나눈 깨달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흔들리는 것과 비우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그러나 깊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오래 떠들고 있으려니 부끄러워졌다. 숲에서는 숲을 볼 수 없지. 그러니 지금은 가까이 있는 것만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을 포장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초여름의 숲은 고요했고, 걸음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가끔 바람이 불어오면 고릴라처럼 양팔을 들어 티셔츠 사이로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우오오, 소리를 내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바보 같아 보일까 봐 관뒀다.
“다람쥐야.” 친구가 말했고, 나는 친구의 손가락을 따라 나뭇가지를 오르는 두 마리의 작은 짐승을 봤다. 아, 이곳은 숲이지 참. 벌새도 있고, 산모기도 있고, 운이 좋으면 여우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길 한복판에서 여우를 만난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청설모나 다람쥐같이 시시한 애들 말고 매끈한 털과 빛나는 눈을 가진 진짜 여우 말이다. 입술을 내밀고 오쪼쪼 혀를 튕겨야 할까, 아니면 고양이를 다룰 때처럼 이마를 내밀며 기다려야 할까. 그런 무용한 상상을 하는 동안 친구는 벌써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앞서 걷던 친구는 빽빽한 나무 군집 앞에 섰다. 키가 5미터는 족히 넘을 법한 나무 거인의 머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친구는 두꺼운 나무 기둥을 보며 꽃꽂이를 할 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사람들은 꽃잎을 보느라 화병 속에 감춰진 줄기를 잊곤 하는데, 꼭 우리가 거기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라고. 친구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어떤 사연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그가 꽃잎 아래 줄기를 보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자 조금 안심이 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곳이 평범한 숲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원생대(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를 생각나게 하는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었거나, ‘지구의 배꼽’ 울룰루였다면상상의 여지도 없이 압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의 자연은 경탄의 대상이 아니었다. 너무 사소해서 무용하고 아름다운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작은 숲길일 따름이었다.
“배가 고프다아.” 늘 그렇듯 정직한 우리의 몸은 스스로 멈출 타이밍을 알았다. 우리는 허기를 이기기 위해 잠깐 동안 묵언 수행을 했고, 서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흙길과 나무다리,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김밥을 나눠 먹는 가족,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을 지나, 백발의 노부부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어느 한 지점에 닿았다. 산 아래 펼쳐진 멋진 호수가 이번 산책의 종착지인 원천저수지였다. 나는 그제야 숲에서 조금 떨어져 나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숲에서 만난 많은 것들이 지도 속 어느 좌표에 있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숲에서는 숲을 볼 수 없으며 숲 바깥의 것을 통해서만 숲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런 무용한 생각들 속에서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