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호 [세상보기]모두가 무언가를 마신다 영화 속 ‘한 잔’에 관한 안내서

 












[세상보기]



 

모두가 무언가를 마신다 영화 속 한잔 안내서


 

사람마다 떠올리는 ‘한잔’에 관한 추억이 있다. 한여름 밤 오랜 친구들과 잔디밭에 둘러앉아 마셨던 시원한 맥주 한잔,마주앉은 첫사랑만큼 향기로웠던 커피 한잔, 실연의 상처 후 흑역사를 생성해 준 소주 한잔까지. 평생 기억하는 순간을만드는 한잔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영화 속 한잔의 순간을 들여다보았다.


 

글 권유진










 

#01


 

맥주 한 병에서 찾은 자유와 희망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희망은 좋은 겁니다. 최고의 선물이거든요. 그렇게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퇴근 후에 마시는 맥주가 특별히 맛있는 이유는 단순히 맥주 고유의 맛과 향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루 종일 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모든 고민과 괴로움을 맥주 한 잔으로 씻는 순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는 온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쇼생크 탈출>에는 자유를 상징하는‘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 한 병’이 등장한다.

대형 은행의 부지점장으로 촉망 받던 앤디 듀프레인은 아내와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앤디는 동료들과 지붕 보수 작업을 하던 중 세금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간수의 푸념을 듣는다. 앤디는 간수에게 세금을안 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면서 자신의 동료들에게 맥주 3병씩 줄 것을 요구한다.

앤디와 그의 동료들은 지붕 보수 작업이 끝나기 전,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마신다. 앤디의 친구이자 영화 속 화자인 레드는 그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우린 마치 자유인freeman처럼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마셨다. 꼭 우리들 집 지붕을 고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린 부러울 게 없었다.’

앤디가 동료들에게 선물한 차가운 맥주는 잠시나마 그들을 평범했던 시절로되돌아가게 해준다. 앤디 역시 동료들과 여유롭게 얘기를 나누며 ‘맥주나 한잔’ 할 수 있는 예전의 자유로운 일상을 누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을 꿈꾼다. 이후 앤디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계획하고 실천해 나간다. 교도소 내 도서관을 확장하기 위해 매주 주정부에 편지를 보내고, 다른 재소자들에게 삶의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 처벌을 무릅쓰고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준다. 앤디는 끊임없이 자신의 동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면서 동시에 자신도 자유를 느낀다.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던 그는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02


 

상처와 외로움을 치유하는 커피 한잔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The Furthest End Awaits, 2014


 


 

“커피콩은 멀리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온단다. 여긴 손님에게 가기 전 잠깐 들르는 것뿐이니까우리가 손님들과 무사히 만날 수 있게 해줘야 해.”

미사키는 8년 전 배를 타고 나갔다가 실종된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간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소원했던 사이지만, 미사키는 아버지가남긴 바닷가에 버려진 창고를 개조해 카페를 열고, 아버지를 기다린다. 하나밖에 없는 이웃, 싱글맘 에리코는 미사키와 자신의 아이들이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며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십대에 엄마가 되어 돈을 벌기 위해치열하게 살아온 에리코의 삶에는 아이들과 이웃이 자리 잡을 여유가 없다.그러던 어느 날, 미사키는 급식비를 내지 못한 에리코의 딸 아리사에게 카페에서 일할 것을 권한다.

푸른 바닷가 풍경이 더없이 아름다운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은등장인물들이 커피를 매개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다. 어려서부터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해야 했던 미사키와 아버지가 없는 또 다른 가정의 가장인 에리코, 외지로 일을 나간 엄마를 매일 기다리는 아이들은 서로 각자의외로움을 앉고 살아간다. 파도가 맞닿는 세상 끝에 위치한 미사키의 카페는에리코 가족들의 만남과 치유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누군가의 추억을 간직한 채 버려졌던 창고가 번듯한 카페로 재탄생하고, 그곳에서 원두를 볶고, 갈아 만들어진 커피 한잔은 등장인물들이 외로움을 털어내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과 닮았다. 늘 쌀쌀맞게 미사키를 대하던 에리코는 자신을 도와준 그녀에게 처음으로 커피를 타준다. 서투지만 정성어린 손길로 만들어진 에리코의 커피를 마신 미사키는 이렇게 말한다. ‘남이 타주는 커피는 맛있다’ 평생 남을 위해 커피를 만들기만 하던 미사키는 커피를 탈 줄 모르는 에리코의어설픈 커피맛을 즐긴다.

영화는 서로를 생각하며 건네주는 한 잔의 커피가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처럼 세상이 힘겹고 차가울수록 누군가의 온기는 더욱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전해주고 있다.








 

#03


 

화려한 칵테일 속 거짓과 위선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6


 


 

“마침내 우리는 물살을 헤치는 보트처럼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세계 문학사에서 손꼽히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화려한 영상미로 담아냈다. 호화로운 파티장에서 개츠비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술잔을 들어 올리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대한 개츠비>속 한잔은 사람들의 욕망을 불붙게 하는 금기와 위선을 상징한다.

가난한 육군 장교였던 개츠비는 상류층 여성인 데이지를 사랑했지만 그의 부대가 유럽 전선으로 배치되면서 이별한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가난한 데다 전쟁터로 나가 연락이 끊기자 부유한 명문가 출신인 톰 뷰캐넌과 결혼하고, 전쟁이 끝나 귀국한 개츠비는 데이지가 결혼한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진다.오직 데이지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재산을 모으기 시작한 개츠비는 마침내큰 부자가 되어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매주 자신의 대저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열게 된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은 술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던 1920년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은 곡물이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을 막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금주령을 내렸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대량생산에 따른 경제 호황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재즈의 시대’가 도래했고, 상류층들은 양심과 도덕을 무시한 채 부를 축적해 나갔다. 정부의 금주령을 비웃듯 대도시에서는 무허가 술집이 성행했고,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들여온 밀주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했다. 주인공 개츠비 역시 갱단과 결탁해 불법적으로 술을 제조하고, 유통하는데 가담하면서 막대한 재산을 얻는다. 마침내 개츠비는 데이지와 다시 만나 밀회를 즐기며 예전처럼 깊은 관계가 되어간다.그러나 물질적인 풍요로움 뒤에 도덕적 타락과 부패가 도사리고 있었던 미국의 당시 모습처럼 두 사람 역시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만나며 비극적인 결말을맞는다. 영화 속에서 화려하게 빛났던 칵테일은 당대 상류층들의 탐욕과 이기심, 물질만능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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