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호 [인트로] 노는 물이 다르다, 물 좋은 수원













[인트로]



 

노는 물이 다르다, 물 좋은 수원






 

글 편집실


물의 근원, 수원(水原)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인 약 70만 년 전부터다. 그렇다면 수원에서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그것은 대략 25~20만 년 전부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수원의 지동과 이의동에서 중기 구석기시대(25-20만 년 전~4만 년 전)로 추정되는 긁개와 여러면석기, 몸돌, 격지 등이 채집되었고, 고색동유적·파장동유적과 옛 수원에 속했던 화성 대야미리유적에서 중기 구석기시대 후기와 후기 구석기시대(4만 년 전~ 1만 년 전)의 여러면석기 및 긁개, 밀개, 홈날, 주먹대패, 찌르개, 몸돌 등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서동 꽃뫼유적·율전동유적과 광교신도시부지내(용인 상현동) 유적, 옛 수원이었던 화성 동학산유적 등지에서 신석기시대(1만 년 전~ B.C 2,000-1,500년)의 빗살무늬토기편이 채집되어 수원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철기시대(원삼국시대 포함)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한반도 중남부 일대에는 수많은 소국이 성립되었고 이들은 삼한을 구성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한조」(韓條)에는 삼한 소국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삼한은 크게 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뉘는데 수원지역은 마한에 속했고,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경기도 일대에는 모수국(牟水國), 원양국(爰襄國), 상외국(桑外國) 등의 소국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모수국이 수원 일대의 소국으로 추정되는데 ‘모수’란 이름이 ‘벌물’의 뜻을 갖는 것으로 지금의 ‘수원(水原)’의 뜻인 ‘물벌’과 글자 순서가 바뀌었을 뿐, 뜻이 같기 때문이다. 이후 수원의 이름은 ‘매홀(買忽)’, ‘수성(水城)’, ‘수주(水州)’ 등으로 바뀌었는데 이름에 항상 ‘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수성군은 고려 건국 초인 940년(태조 23) 수주(水州)로 승격되고, 1271년(원종 12) 수원도호부가 설치되면서 ‘수원(水原)’이라는 명칭은 처음 등장한다. 이후 수원부-수원군-수원부 등으로 변화를 거듭하다 조선시대에 와서 수원도호부-수원군-수원부화성유수부-수원군 등으로 바뀌면서 1949년 8월 15일 수원시로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댓글달기_글자수 500자로 제한되며 욕설, 비방글 삭제됩니다.

댓글입력
  • 댓글 내용이 없습니다 ..



수원문화재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