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호 [예술인열전] 진심과 공감으로 비춰진 그들의 세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예술인열전]



 

진심과 공감으로 비춰진 그들의 세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지난 10월 현지윤 작가의 개인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C ountry for Oldman》(2017.10.24.~10.30)가 행궁길 갤러리에서 열렸다. 노인의 삶과 기본적인 생존권 보장이 불투명한 동시대 사회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고 긍정하는 전시제목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시에 출품된 것은 자신의 일터 혹은 생활터에서의 노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작품이었다. 사진 속의 인물(노인)들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라는 전시 제목처럼 마치 그들을 위한 나라가 그곳에 존재하기라도 하는듯 미소 짓고 있었고, 그 미소에서는 진실함이 느껴졌다. 작가는 과연 이 전시를 통해 노인을 위한 나라를 발견한 것일까.






 

글 김유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큐레이터










 

현지윤

Education

2010 건국대학교(서울)

예술디자인대학 현대미술과 졸업



Solo Exhibition

201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행궁길 갤러리, 굿모닝 하우스 갤러리

〈사부인〉, 대안공간 눈

2015 〈사부인〉, 가나아트스페이스



Film

2016 〈뿡빵극장 인형극장〉,

제10회 대전독립영화제

2015 〈사부인〉,

제2회 카톨릭영화제,

제20회 인디포럼

2014 〈사부인〉, 제7회

서울노인영화제












 






 

<사부인>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상실을 겪은 당사자들인 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손녀가 서로의 빈자리를 조용히 채워주고 있는 이 작품은

담담하고 밝은 영상이었지만 그로 인해 그 이면의 상실에

대한 감정이 더 애잔하게 전달되는 작품이었다.












 












 

INTERVIEW






 

사라질 것들에 대한 두려움



현지윤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평상’이라는 행궁동 청년문화예술 네트워크를 통해서였다. 수원에 기반을 둔 청년들이 만든 문화예술 네트워크 평상은 지역주민들과 함께 소통했던 공간으로, 행궁동 작업실에서 코뿔소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던 현지윤 작가를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당시 현지윤 작가는 자신과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부인>이라는 영상 작품을 소개했다. 작품을 보기 전까지 젊은 작가가 할머니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제작했다는 것은 몹시 의아했고, 꽤 흥미로웠다. 노인들에 대한 현지윤 작가의 관심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작가의 관심에 깊게 각인된 할머니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와 홀로 된 외동딸을 걱정하는 외할머니의 기묘한 동거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부인>은 2014년 제작된 약 9분 14초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상 작품이다. 회화 작업을 주로 했던 작가가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모습을 각각 캔버스에 담고, 이 작품을 전시하여 할머니들에게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을 담은 영상은 그 어떤 기교나 화려함 없이 그 자체의 이야기만으로 따뜻함이 느껴졌다.

<사부인>은 결혼이라는 제도로 연결된 관계이지만 어쩌면 남남에 가까운 사부인들 간의 교류, 동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라는 부분이 부각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사부인>은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상실을 겪은 당사자들인 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손녀가 서로의 빈자리를 조용히 채워주고 있는 이 작품은 담담하고 밝은 영상이었지만 그로 인해 그 이면의 상실에 대한 감정이 더 애잔하게 전달되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영상 속에서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 그 시점으로부터 6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부재감을 토로한다. 갑작스런 상실로 인한 상처는 6년이 지났음에도 아물지 못했고, 또 다시 겪을지도 모를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었다.

이처럼 상실에 대한 개인적인 아픔에서 비롯된 곧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은 더 나아가 할머니들을 작품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목적을 갖게 했다. 실제로 작가는 <사부인>을 연출할 즈음 할머니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하나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연상되었고 어떤 필연적 이유로 영상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할머니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내야 한다는 혹은 기록해야 한다는 어떤 절실함이 있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부인>을 제작하게 되었고, 현지윤 작가가 영상이라는 작업을 통해 상실과 사라짐에 대해 기록하는 첫 시작이 되었다. 기억하기 위한 기록, 이것은 상실에 대한 저항으로서 언젠가 반드시 사라질 대상에 대한 애도의 차원으로 연결된다.












 

애도의 다른 방식



애도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대상, 즉 죽음에 대한 슬픔의 감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라진 분명한 대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애도는 상실한 모든 대상, 그리고 상실할 수도 있는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애도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애도의 감정은 상실한 대상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상실의 고통은 모든 대상을 곧 사라질 것으로 여기고, 이에 저항하며 기억하기 위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가 그의 어머니를 잃은 직후부터 써내려간 『애도일기』에는1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가 말하는 ‘기념비’라는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한 기록이다. 그는 망각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애도일기』를 써내려갔고, 이 과정을 통해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 이후 겪는 다양한 감정들을 세심하게 표현하며 상실의 고통을 치유해 나간다. 또한 이러한 애도 기간 중에도 자신의 주요 저서들을 완성하며, 애도의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현지윤 작가는 개인적 상실로 인한 애도의 감정을 영상을 통한 기록으로 표현했다. 이 역시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갑작스러운 상실과 그에 대한 감정을 담은 <사부인>은 현지윤 작가의 ‘기념비’이며 ‘애도일기’일 것이다. 2014년 <사부인>을 제작했던 당시에만 해도 사적인 애도 차원에 머물렀던 노인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간다. 외할머니의 병환을 겪으며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 복지의 문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 등을 체감한 작가는 동시대 사회에서 노인의 현실적 삶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적인 애도와 기억의 방식에서 나타난 노인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회화를 주 표현매체로 사용했던 작가가 영상이라는 표현 방식을 사용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우연적으로 접했던 영상 제작 수업을 통해 그림이라는 단편적 장면으로는 전달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영상과 함께 하면 더 큰 공감의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떤 특정한 일이나 사건을 깊이 이해하며 마치 내 이야기인 것 같다 느끼는 ‘공감’의 경험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반응을 통해 깨닫게 된다. <사부인>이라는 자신의 개인적 영상이 관람객들에게 미친 영향에 스스로 놀랐다고 말하는 작가는 영상에 더 깊이 탐닉하며 영상이 가진 힘을 공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작가의 개인적 이야기들과 상실에 대한 애도가 관객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험은 현지윤 작가의 작업 영역과 방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가족으로서 할머니들로부터 비롯된 사적인 애도를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애도의 감정을 다르게 풀어나간 작가의 방식일 것이다.












 

1978. 4. 12일 경

기록을 하는 건 기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다. {이렇게} 기록을 하는 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다. 아무것도 자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 고통을.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없는 그런 것.



“기념비”의 필요성.2












 

노인이라는 것은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나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만큼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진심어린 관심과 공감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아닐까.












 












 

소통의 대상으로서 노인



애도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대상, 즉 죽음에 대한 슬픔의 감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라진 분명한 대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애도는 상실한 모든 대상, 그리고 상실할 수도 있는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다. 애도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애도의 감정은 상실한 대상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상실의 고통은 모든 대상을 곧 사라질 것으로 여기고, 이에 저항하다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전시로 돌아가 본다. 현지윤 작가는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위해 행궁동 인근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전에 선택한 만남도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 만남도 있었다. 사실 행궁길 갤러리에 소개된 사진 작품들은 영상, 기록물 등으로 이루어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라는 전체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약 6개월 동안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20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 대화하며, 노년의 삶,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 과정의 결과물을 영상과 사진, 책이라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기록하였다.

영상, 회화 등 현지윤 작가의 작업방식은 다양하지만 이 전시에서 중요하게 생각된 것은 전체 과정을 디렉팅하고, 노인들과의 소통과정 전 지점을 작가가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다는 것이다. 사진 혹은 영상이라는 완결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것을 완성하기 위한 소통의 과정이 전체 프로젝트의 핵심인 것이다. 또한 프로젝트를 통해 파생된 기록들은 계속해서 또 다른 소통을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된다.

전시된 사진 작품들 중 행궁동 문구점 할아버지를 촬영한 사진이 눈에 띄었다. 불조심이라는 푯말 앞에서 웃고 계신 할아버지는 얼마 전 근방에서 발생한 큰 화재사건의 당사자였다. 사진을 촬영한 것은 그 이전이었지만 공교롭게도 불조심이라는 문구가 우연히 사진 속에 담긴 것이다. 이러한 우연적 요소도 놀라웠지만 그 직후 걱정스런 마음에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가 안부를 챙겼던 작가의 따뜻함이 더 인상적이었다. 현지윤 작가가 어떤 장르적 차원에서 커뮤니티 아트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뿐인 소통, 커뮤니티 아트라는 허울 속에서 젊은 작가의 진솔함이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노인이라 불리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법적인 나이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현지윤 작가와의 대화 중에 노인이라는 것은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나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만큼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심어린 관심과 공감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일 것이다. 노인들은 소통의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것을 발견한 현지윤 작가는 다름 아닌 소통과 공감의 과정 속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며 기억하기 위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가 그의 어머니를 잃은 직후부터 써내려간 『애도일기』에는1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가 말하는 ‘기념비’라는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한 기록이다. 그는 망각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애도일기』를 써내려갔고, 이 과정을 통해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 이후 겪는 다양한 감정들을 세심하게 표현하며 상실의 고통을 치유해 나간다. 또한 이러한 애도 기간 중에도 자신의 주요 저서들을 완성하며, 애도의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갔다.

현지윤 작가는 개인적 상실로 인한 애도의 감정을 영상을 통한 기록으로 표현했다. 이 역시 망각의 고통을 이기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갑작스러운 상실과 그에 대한 감정을 담은 <사부인>은 현지윤 작가의 ‘기념비’이며 ‘애도일기’일 것이다. 2014년 <사부인>을 제작했던 당시에만 해도 사적인 애도 차원에 머물렀던 노인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간다. 외할머니의 병환을 겪으며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 복지의 문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 등을 체감한 작가는 동시대 사회에서 노인의 현실적 삶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적인 애도와 기억의 방식에서 나타난 노인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회화를 주 표현매체로 사용했던 작가가 영상이라는 표현 방식을 사용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우연적으로 접했던 영상 제작 수업을 통해 그림이라는 단편적 장면으로는 전달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영상과 함께 하면 더 큰 공감의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떤 특정한 일이나 사건을 깊이 이해하며 마치 내 이야기인 것 같다 느끼는 ‘공감’의 경험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반응을 통해 깨닫게 된다.

<사부인>이라는 자신의 개인적 영상이 관람객들에게 미친 영향에 스스로 놀랐다고 말하는 작가는 영상에 더 깊이 탐닉하며 영상이 가진 힘을 공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작가의 개인적 이야기들과 상실에 대한 애도가 관객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험은 현지윤 작가의 작업 영역과 방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가족으로서 할머니들로부터 비롯된 사적인 애도를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애도의 감정을 다르게 풀어나간 작가의 방식일 것이다.












 

1 쪽지 형식으로 써나간 일기들은 롤랑 바르트 사후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되었고, 국내에도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롤랑 바르트, 김진영 옮김, 『애도일기』, 이순, 2012.

2 위의 책, p. 123

3 작가는 페이스북, 웹매거진 브런치 등에 프로젝트의 결과로 제작된 영상을 공개하여 공유 하고 있다.





김유진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공공미술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경계 없는 전시를 기획하고자 한다. 기억과 기록에 대한 맹목적 관심을 학제적 연구로 풀어내는 것이 목표인 큐레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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