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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문화읽기] 미니멀리즘, 가성비 갑의 인생철학인가?
미니멀리즘, 가성비 갑의 인생철학인가?
글 정호훈 문화칼럼리스트 일러스트 아방
바야흐로 봄이다. 겨우내 꼭꼭 닫았던 문을 열고 먼지를 턴다. 정리도 하고 새로운 분위기로 인테리어를 할 생각을 하니 ‘물건’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내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래, 쓸모 있는 것만 남기자” 그렇게 사람들은 이제, 군더더기 없는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군더더기 없는 삶의 본질을 추구하다
‘Less is more’. ‘적을수록 풍요롭다’, 혹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모토로 대변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작가의 주관이나 표현을 철저히 배제하고 작품의 본질이나 재료의 특성에 집중하는 것을 추구하는데, 1960년대 처음 출현한 당시에는 단순함과 간결함이 차가움으로 느껴져 대중의 환영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풍요로움의 상징인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경제난을 겪고 나서 과한 소유는 곧 경제적 위기와 직결된다는 깨닫게 되었고, 수집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경우, 크고 작은 지진 속에서 자신의 수집품이 흉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해 물건이 없을수록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쟁 이후 절약과 검소함을 중요시하던 한국은, 급성장에 따른 무분별한 소비로 넘쳐나는 물건이 사람을 지배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급기야 명품백을 “우리 아기”라며 물건에 집착하는 ‘물신숭배’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허례허식 보다는 실용을, 의미 없는 소비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혹은, 경제난에 SNS에 자신의 소비를 자랑할 수 없어 ‘단촐’한 삶의 모습을 멋스럽게 보여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렇게 미니멀리즘은 미니멀라이프minimal life로 우리 삶에 들어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니멀라이프는 마치1970년대 도요타Toyota의 전사적생산관리Total Productive Management 방법론과 닮았다는 것이다. 이는 정품(정확한 물품)을 정량(정확한 양)만큼 정위치(정확한 위치)에 사용하여 제조상의 낭비를 줄이고 시간을 단축하고,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정리seiri, 필요한 것을 잘 보관하는 정돈seiton, 깨끗하고 합리적인 상태를 만드는 청소seiso, 정리 · 정돈 · 청소의 상태를 유지하는 청결seiketsu, 그리고 이것들을 지켜나가는 습관화shitsuke 하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효율성’이 삶의 ‘가성비’와 연결이 되고 있다.
미니멀리즘을 미니멀리즘하게 받아들이자
사실, 이러한 생산 효율을 위한 공장관리 방법론은 소비자에게 가성비라는 훌륭한 소비 가이드를 주지만, 생산 과정에서 인간성은 배제되고 인간의 흔적은 지워져 제품은 차가워지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들은 심플함에서 미적 매력을 느끼고 그것을 세련되다(혹은 모던하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서적 교감과 같은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추억이 깃든 삶의 흔적들을 너저분하다며 정리하면서도 응답하라류의 소위 ‘추억팔이’ 드라마에 목을 매고, 극단적인 명확성과 단순성을 제공하는 아이폰을 통해 공방에서 만든 수제품을 쇼핑하고 있지 않은가? 인생을 효율적으로 재단하는 자기계발서나 인간관계론에 지친 사람들이 ‘미움받을 용기’라는 키워드에 매료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미니멀리즘’이 모던한 디자인쯤으로 회자되며 또 다른 소비를 강요하고, 사람들은 또 다른 철학과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 우리 모두 ‘무소유’의 법정스님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인간성’이며, 인간성은 삶의 온갖 경험들과 너저분한 감정들, 그리고 시행착오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비움의 자리를 인간성으로 가득 채우려는 노력이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신동엽 시인의 말처럼, 미니멀리즘을 미니멀리즘하게 받아들이자
정호훈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광고홍보학을 전공해 한국영상대 겸임교수로 미디어 분야, 여론 분석 및 PR컨설팅 분야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경영과 브랜드마케팅을 비롯해 문화와 심리학 칼럼니스트로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