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호 [공간탐색]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유의 식탁


[공간탐색]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유의 식탁



수원 서둔동에 문화로 숨을 불어넣기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범상치 않은 이름이지만 공간의 모습은 의외로 소박하다. 오래된 세탁소와 문방구가 이어지는 길 끝에 위치한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빼꼼’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주민들에게 말을 건넨다.



글 강일서 사진 김오늘



생활적정랩 빼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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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둔동 104번지에서 커뮤니티 스튜디오 104로


기분 좋은 그윽한 향의 아메리카노를 손수 내려주시며 빼꼼 공간의 공동대표 임재춘 씨가 우리를 맞이했다. 특별히 마련한 넓은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공간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씩 해소했다. 경부선 철도를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 서수원은 비행기 소음과 저개발로 대변되는 곳이다. 이곳은 도시화가 더딜 뿐 아니라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간도 거의 없는 지역이다. 그런데 서수원에서도 끝자락에 위치한 서둔동에 생활적정랩 빼꼼이라는 문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처음 임 대표가 서둔동 104번지를 찾았을 때는 낡은 정육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공간과의 인연은 2015년 7월, 서수원 문화자원 연구프로젝트 <웨스턴 스토리>를 계기로 모인 문화기획자와 예술가들이 교류와 소통할 플랫폼 공간이 필요했고 임시로 이곳을 사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임 대표는 지금까지 수원화성, 행궁이 문화정책 중심지로 관광 쪽이 대부분이었는데, 현재는 그곳이 과부하 상태이기도 하고 서수원은 문화적 불모지였던 동네이기도 해서 앞으로의 문화공유를 위해 지역에 관한 선행 연구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 당시에는 이 공간을 얻으려고 했다기보다 임시적으로 기획자들의 아카이브 공간이 하나 있어야겠다 생각했었고 서수원 안에 있어야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웨스턴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서둔동 104번지 주소를 모티브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스튜디오 104’라는 단체가활동하게 되었고, 거점 공간을 이곳에 두게 된 것이 생활적정랩 ‘빼꼼’의 모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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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노동의 과정, 발효로 커뮤니티 공간 마련


임 대표는 프로젝트만 마무리되면 임시로 하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여러 가지로 본인의 상황이 달라진 것도 있었고, 때마침 경기문화재단에서 문화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문화를 기반으로 한 공간 지원 사업을 실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둔동과 더 긴 인연으로 여러 가지를 좀 더 들여다 놓으면서 작년 12월 달에 ‘빼꼼’으로 바꿔 내게 된 거죠.” 창생공간 6곳 중 세 번째로 문을 연 ‘빼꼼’에서 그녀가 선택한 주제는 ‘발효’다. “시간과 노동이 들어야 제대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을 현대인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돈으로 사려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회복할 수 있는 주제로 발효를 택했죠.”라고 설명했다.
인문학적 개념으로 커뮤니티 키친 공간을 통해 발효를 공유하고자 한 임 대표는 빼꼼에서 단순히 발효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닌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강의를 통해 내용적인 영역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그 과정에는 지역과의 연계도 포함되어 있다. 작년에는 지역 잉여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맞은편 청과에서 신선도가 약간 떨어진 팔지 못하는 남은 과일을 받아서 사과잼을 만들거나 하루 지난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지역의 잉여물들 중 연결할 수 있는 것들은 연결해서 서로 도움을 주며 상호적인 관계가 되었다.
때로는 서둔동에 인디밴드 동산 씨 같은 지역 예술가 분들이 와서 공연도 하고 플리마켓도 열어 함께 노래하고 공유하며 즐겁게 빼꼼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작년에는 젊은 연극배우가 서둔동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직접 부른 노래를 한곡 씩 담아 CD로 선물하며 더 가까워졌다고 즐거운 에피소드를 전했다. 처음에는 워낙 연로하신 주민들이 많아서 젊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보셨는데 지금은 이 공간에 궁금증이 생기면서 때때로 와서 물어본다고 한다.




많은 작업자들이 함께 만든 문화 공유의 터


‘빼꼼’은 발효에 대한 연구과 리서치를 비롯해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한 달에 한번 정도 발효가 되고 있는 과정의 물건이나, 발효가 된 것, 발효된 것을 가지고 만든 음식들을 같이 맛보는 시음회 행사를 할 예정이며, 주민들을 위한 유용한 공간으로서의 활용 계획도 세우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영화 보는 모임을 하고 싶다고 가능한지 물어오며 작은 요청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그래서 책읽기 모임 등 주민들과 쉐어해서 사용할 수 있게 공간의 개념을 바꿔보려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쪽 벽면에 놓인 알록달록 컬러를 입은 피아노가 눈에 띄었다. ‘달려라 피아노’라는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버리는 피아노를 기증 받아 다사리 학교의 학생들이 직접 꾸며준 피아노라고 한다. 이 외에도 ‘빼꼼’ 공간 조성에 도움을 준 예술가 분들이 많다. 싱크대, 천장, 식탁 등을 만든 천원진 목공 작가와 곽동렬 예술가, 손이예술의 이윤지 작가가 공간을 함께 꾸몄다. 임 대표 본인은 이렇게 예쁘게 꾸미는 재주는 없다며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표현했다. 대부분의 문화 작업자들이 일이 있으면 하지만 떠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모임을 하고 싶어도 활동의 근거지가 없다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후배 문화기획자들도 별로 없고, 청년 예술가들을 보면서 이 공간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고. 임 대표는 ‘빼꼼’을 통해 리서치도 하고 작업도 하며 서둔동의 문화 매개공간으로 올해는 더 많은 모임을 갖고 집중해서 같이 할 계획이다. 또 생활적정랩 ‘빼꼼’은 ‘become’의 되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 공간도 아직 되어 가는 중이라며 지하 공간까지 완성되고 나면 더 많은 이야기들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며 바람도 함께 담았다.




창생공간이란?


만들기를 실천하는 시민과 작업자를 위한 열린 제작공간이다. 이곳은 생활기술을 매개로 생산과 연구, 기록, 네트워크, 자립에 대해 고민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인적 네트워크망을 의미한다. 최근 경기문화재단은 삶터가 중심이 되어 주민의 자발적인 동기를 이끌어내고 지역문화를 연결할 수 있는 '공간' 개념의 확장과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전통적인 DIY를 넘어서 문화적 생산기술을 공유하며 지역의제를 해결하거나 자립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장인으로 또는 독립적인 생산자 커뮤니티를 시도한다. 이렇게 지역 곳곳의 개인이 생성한 기술은 지속적으로 창생 라이브러리에 축적되어 문화적 방식으로 지역에 환원된다.
_ 경기문화재단 2016 창생공간 소개글에서 발췌




생활적정랩 빼꼼

주소 수원시 권선구 상탑로 104(서둔동 200-45)
문의 임재춘 대표 findspring@naver.com




INTERVIEW


임재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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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꼼’은 발효가 되어 간다는 ‘become’의 뜻을 가진 한글 발음으로
누구나 빼꼼 고개 내밀며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죠.”




경기문화재단에서 오랫동안 문화기획자로 일을 했었죠. 그런데 제가 둘째 출산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 또 그 과정에서 필요한 질문들이 생겼는데 사실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는 거기에서 시작됐어요. 예술이나 문화 활동이라는 것이 결국은 우리들 삶의 질에 좋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제가 처한 환경이 바뀌면서 그 질문들을 내 삶에 가져와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과제가 생겼죠. 그러다보니 제가 하는 일하고 아주 밀접해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주방, 살림 등 먹고 사는 문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들 안에 주방이 굉장히 중요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이죠. 무언가 만드는 주방과 함께 일도 하며 먹고 커뮤니티 할 수 있는 공간인 큰 식탁을 놓게 되었고 그에 따른 일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문화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 몸을 써야 하는 것 두 가지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그렇게 발효를 콘셉트로 방향을 잡았고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발효와 관련된 다양한 제조 행위들을 이 공간을 통해서 해보고 싶습니다. 발효 음식을 파는 것보다는 원래 해오던 문화였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진 술을 만드는 발효장인이나 관련된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을 통해 리서치도 하고 레시피도 공유하며 관심 있는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서둔동은 철물점과 고물상 등 제조공간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앞으로 서둔동을 상징할 수 있는 ‘손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 서둔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그런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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