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 [Editorial] 문화생태계와 생활문화라는 ‘기나 긴’ 도정



[Editorial]

문화생태계와 생활문화라는 ‘기나 긴’ 도정




문화생태계와 생활문화는 요즘 문화계의 핫이슈다. 생태계라는 말은 그 친환경적 언표와 달리 사실 위기의 담론이다.
급속한 난개발과 화석연료로 인한 기후변화와 뭇 생명들이 겪고 있는 위협에 대한 반성을 담은 위기의 담론이기 때문이다.
문화에 생태계라는 말이 붙었다는 것은 이 용어의 지향과 맥락을 잘 보여준다.
문화생태계 문제는 보편적 문화향수 권리에 더해 문화기본법 및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 발효됨으로써 최근 문화계의 핵심의제로 떠올랐다. 정부기관의 유관부서와 각 광역/기초문화재단을 중심으로 광범한 실태조사와 함께 문화행정가들은 현재 대책과 정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문화를 문화만으로 풀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맹자(孟子)의 항산항심론(恒産恒心論)이 말하듯 문화의 향수는 소득불균형 문제, 살인적 업무시간으로 인해 수면시간조차 부족한 시간적 약자인 직장인과 근로소득자들, 입시지옥에서 학원으로 내몰린 채 스마트폰과 ‘포켓몬 고’ 같은 게임에 열중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노년층의 문제와 연동되어 있다. 문화기본권의 대전제는 안정된 소득과 여가시간, 적절한 문화정책과 다양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므로 문화생태계의 복원과 활성화는 정치적 리더십의 교체와 상관없이 중·단기적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라 장기 지속적 과제로 추진되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화연구 및 비평의 패러다임을 정초한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가 말한 문화는 일상적(ordinary)이면서 동시에 문화는 삶의 전체적 양상(the whole way of life)이라는 두 명제는 생활문화 활성화와 문화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문화는 특정한 계층과 집단에 국한된 특권화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며, 존재론적 조건상 우리 모두의 것이다. 문명이 자연에 대한 인간임의 표현이라면 문화는 인간의 인간임의 표현이라는 말처럼 문화와 예술이 뒷받침되어야 인간다운 온전한 삶 즉 삶의 총체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삶의 전제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문화가 있어야 하며, 또 다양한 문화가 함께 일상생활 속에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라는 이름의 민폐―곧 소설가 황석영의 표현을 빌리면 시민들이 “조용한 보통의 날들”을 누릴 권한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가 종교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를 갖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되는 것처럼 문화를 향유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어렵고 ‘기나 긴(long)’ 도정이며, 장구한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문화지기 조성면 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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