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 [Editorial] 다시, 청년문화를 위하여



[Editorial]

다시, 청년문화를 위하여




청년은 언제나 역사와 문화의 주역이었다. 그는 근대화의 담지자였고, 민족이 나가야 할 새로운 가치와 목표를 제시하는 선구자였다. 그는 ‘개화사상’의 전도사였으며, 자유ㆍ인권ㆍ민주주의 등 근대적 가치의 전파자이기도 했다.
모던 보이 오빠들과 나혜석 같은 신여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20세기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바꾼 ‘68운동’의 진원지도 청년이었다. 68운동, 이른바 5월 혁명도 시작은 매우 사소했다. 남학생의 여학생 기숙사 방문과 기숙사 남녀 왕래를 금지하는 낡은 구습에 항의하던 낭테르대학 학생들의 시위가 프랑스와 세계 전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갔던 것이다. 이를 통해 낡은 정치문화와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 그리고 각종의 차별적 사회제도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운동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청년과 청년문화도 만만치 않았다. 개화와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한 모던 보이들과 신여성들, 한국정치사의 흐름을 바꾼 4월 혁명, 청바지 차림에 생맥주를 마시고 통기타를 치며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7080세대들, 90년대 한국대중문화를 주도한 신세대들에 이르기까지 청년은 정치적 저항운동과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열어 보인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청년들’이 없다. ‘나노베’와 ‘롤 게임’에 빠져 지내는 ‘덕후’들과 노량진 고시원의 불을 밝히는 ‘공시생’은 있어도 문화의 창조와 변화를 주도할 문화적 실천과 의미의 생산자들이 눈에 띠지 않는다. 극심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엄혹한 상황에서 임시직 알바로 버티면서 반지하방과 고시원, 옥탑방을 전전하는 청년들의 신산한 삶을 그린 김애란의 단편소설들은 그래서 더 실감나게 아프다. 기운 운동장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시대의 프로메테우스는 정녕 없단 말인가.
열여덟 살에 계몽잡지 『소년』을 창간한 최남선, 청년문학의 표상으로 자리 잡은 윤동주, 고등학교 재학 중에 등단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황석영과 최인호, 놀라운 문장력으로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김승옥, 산업화 시대 노동운동의 상징이 된 전태일,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도 청년들이었다. 차별적 지배문화와 이에 저항하는 안티테제로서의 하위문화가 아니라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바꿀 창의적인 젊은 문화가 나와야 한다.
청년문화가 없는 사회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청년과 청년문화가 살아야 우리 문화와 사회가 산다. 그러므로 문제는 다시 청년문화다.

문화지기 조성면 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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