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 [책 나들이] 당신의 라이벌은 누구인가요?


[책 나들이]

당신의 라이벌은 누구인가요?



글 김희만 역사학자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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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한국미술사의 라이벌』 - 감성
과 오성 사이-, 세창출판사

라이벌(rival)의 사전적 의미는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경쟁자, 곧 적수(敵手)를 가리킨다. 그 어원은 라틴어로 강을 의미하는 rivus에서 파생한 것이며, rivalis라는 단어는 “같은 강을 둘러싸고 싸우는 사람들”에서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두고 싸우는 사람들”의 의미로 발전하고, 이것이 프랑스어를 통해 영어로 전화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를 쌍벽(雙璧)이라고도 쓰고 있다.
가끔 이 책 저 책에서 라이벌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인물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그 자체 흥미로운 전개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 간에 호적수를 만난다는 것은 그 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당해 사회의 역동성을 잠재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임팩트로서도 중요한 인자(因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의 제목은 『한국미술사의 라이벌』로서, 그 부제가 ‘감성(感性)과 오성(悟性) 사이’이다. 18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300년간 한국미술사를 대표하는 8명의 작가를 소재로 라이벌을 특정화함으로써 강의와 글쓰기에서 훨씬 다이내믹한 동기 부여가 가능하였다고 보인다. 각 인물의 선정도 우리가 익히 아는 대상을 주로 선정하여 그들과의 익숙한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이 책에서 1강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를 과장과 방불이라는 표현으로, 2강은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을 사의와 사실로 표현하고, 3강은 청전 이상범과 소정 변관식을 평담과 분방으로 표현하고, 대향 이중섭과 미석 박수근을 격정과 과묵으로 표현함으로써 인물의 대립도 그러하려니와 그 소재를 멋지게 구사하여 읽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이 목차의 구성에서 보여주듯이, 각 라이벌의 성격을 고도의 절제된 대립적인 언어로 구사함으로써 읽는 이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으며, 이는 이 책 이야기의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내용을 뼈대만 간추려보면, 겸재와 단원은 각각 영조와 정조 때 조선적 문예부흥기의 중심에 섰던 화가들로 겸재는 대상을 과장하며 마음에 기억된 조선 땅을 그렸으며, 단원은 실경사생(實景寫生)을 통해 대상의 외모를 닮게 묘사(방불)하였다. 다산과 추사는 18세기 전통이 쇠락하는 조선 말기에 부상한 예술론의 대립자들로, 다산은 현실인식과 대상 묘사의 사실(寫實)을 보여주며, 추사는 추상적 사의(寫意)를 내세운 개성을 강조하고 있다.
청전과 소정, 대향과 미석은 전통의 계승과 붕괴, 신미술의 수용과 갈등이 어지러이 복합된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들로, 청전과 소정은 전통 수묵화 분야에서 근대 형식의 재창조를 평담과 분방함으로 표현하였으며, 대향과 미석은 서양에서 유입된 신미술을 우리 정서에 걸맞게 한국화한 작가들로, 대향은 감정의 격정적 표출로 자아(自我)를 강렬하게 드러내었으며, 미석은 과묵함으로 타자(他者)인 주변 이웃의 삶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가 그려낸 각 인물에 대한 평을 간단히 살펴보면, 정선은 꾸밈없고 순박하며 도량이 넓었으며, 특히 40대 장년 이후 주변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한 흔적으로 호호인(浩浩人)으로 부를 만하며, 김홍도는 까칠한 장인이었지만 문인다운 인격으로 인해 교유관계의 폭이 넓고 두터웠으며, 위로는 군왕과 사대부 문인부터 아래로는 중인과 화원에 이르기까지 사귐이 다양했다고 한다.
정약용은 외강내강(外剛內剛)형으로 매사에 밝고 마음이 넓었으며, 재능이 뛰어난 만능 엔터테이너인 반면 너무 꼼꼼하고 깐깐하게 사리를 분별했고 카랑카랑한 성격이었던 모양이며, 김정희는 외유내강(外柔內剛)형으로 키가 크지 않고 살집이 있었으며, 부드럽고 온화해 보이지만 까다로운 성격으로 지필묵과 문방구류도 명품(名品)을 선택할 정도로 최고와 완벽을 추구하는 귀족적 인간상을 엿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상범은 키가 작고 말수가 적으면서 체제에 순응하며 살았던 선한 이미지로, 선전과 국전 출신의 미대교수 작가로, 또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으며 해방 후에도 국가체제나 미술계의 정치조직에서 벗어나지 않았던데 반해, 변관식은 키가 크고 힘이 장사였으며, 젊었을 때부터 운동에 만능이었고 방랑벽마저 심했다는데, 이는 평생 제도권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면서 국전의 비리를 폭로하는 등 재야적인 외골수라고 인식하고 있다.박수근은 산골 마을의 순박한 이미지를 떠올리듯 그의 후기 인물사진은 강원도 냄새가 물씬한 지식인의 모습이며, 그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이 대지주의 아들로 동경 유학을 다녀와 화가가 되었던 반면, 그는 철저하게 독학으로 그림을 익히고, 또한 독학으로 교사자격증을 따서 미술교사로 근무한다.
이중섭은 훤칠한 키에 상당히 잘 생겼으며 말수가 적은 내향적인 성격이었으나, 순수하고 따뜻한 인간성 때문에 주변에 항상 친구들이 많았다고 하며 화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하여 신사조(新思潮)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려고 하였다.
이 책은 강의 원고를 토대로 집필되었기 때문인지 그 표현이 부드러우면서도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내용을 이해하기 쉬울뿐더러, 그림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서 미술사 인식에 많은 도움이 된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림과 해설을 곁들이면 어느새 미술사의 전반적 흐름을 목도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연암 박지원이나 고암 이응노, 그리고 수화 김환기 같은 보너스가 따로 준비되어 있어서 넉넉한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다.기왕에 이러한 라이벌을 소재로 한 책으로 참고해 읽을 만한 것으로는, 김윤식의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 역사문제연구소의 『한국현대사의 라이벌』 · 김갑동의 『한국 역사상의 라이벌』 · 조현설 등의 『고전문학사의 라이벌』과 미술사의 외연(外延)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책으로 유홍준의 『화인열전』 · 최열의 『화전』 · 오주석의 『그림속에 노닐다』 등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번쯤은 가까이해도 좋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살면서 나름 그 분야의 라이벌로 떠오르거나 아니면 그 대상을 선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방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라이벌’, 생각만 하여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잠시 일상에서 손을 멈추고 대신 냉철한 머리에서 “나의 라이벌은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잔잔한 파도가 밀려왔다가 멀리 가버리기 전에 오늘도 행복한 고민을 해보자. 이것도 삶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김희만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의 이해』,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등의 공저서와 「수여선의 개통과 사회변화」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뉴스피크에 ‘헌책방의 인문학’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격주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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