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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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예술인열전] 영원한 문화예술인 김훈동 수원예총 회장
영원한 문화예술인
글 이형복 기획홍보팀 사진 김신
“예술은 상상력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래서 삶의 문화가 넘쳐나도록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접하도록 해야합니다.”
12년간 수원예총(한국예술인총연합회 수원시지회)을 이끌어 온 김훈동(70) 회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고견이다. 2015년 2월 정기총회를 마지막으로 임기를 마치는 김 회장은 순수 예술인(문인)으로,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수원예술계의 마에스트로
늘 진취적인 행보로 수원예총의 든든한 구심점이었던 김 회장은 수원의 문화예술판을 한 단계 올려놓는데 힘을 보탰다.
수원예총은 문학과 음악, 미술, 국악 등 8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지역의 대표적인 예술단체다. 서로 다른 장르와 장르를 결합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물론 예술계의 새로운 트렌드와 시민들의 활달한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문화생산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예술인 5명을 한 줄로 세우기 어렵다’고 한다. 그 만큼 개성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와 작가들의 중재자인 예총회장의 책무는 결코 가볍지 않다.
더구나 수원처럼 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지역의 경우 빠르게 변하는 예술판을 읽어내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를 기획력과 화합으로 이끌어낸 대표적인 행사가 2014년 11월 열렸다. ‘수원화성,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라는 주제로 수원화성 일대에서 전시를 연 것이 그 사례다. 수원예총에 소속된 시인과 화가, 사진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수원의 랜드마크인 수원화성에서 이들 작가들이 의기투합한 기획전을 마련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어요. 무거움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돌아가는 것도 같아요.”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김 회장은 수원의 문화지형에 어떤 지도를 그렸을까.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수원예총의 단독 건물을 마련한 것이다. 지난 2005년 2층 규모의 정자 소방서 건물을 리모델링해 예술인들의 보금자리를 꾸렸다. 1층은 아마추어 예술단체 연습공간으로 제공해 숨은 끼와 재주를 연마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했다. 또한 2층은 사무실과 세미나실을 조성해 각종 회의와 문화행사 를 개최했다.
특히 수원예술학교를 개설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 및 인문학 강좌를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매 기수마다 평균 30~40명의 일반 시민이 참여했으며, 최근 16기를 끝으로 500명의 수료생을 배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 동안 수원예총은 시민회관이나 미술전시관 공간을 위탁관리하며 예총 사무실을 운영했어요. 반드시 단독건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수원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이자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 차원에서 그러한 거점이 필요하죠. 또한 예총이 전문가와 아마추어를 육성할 책무도 있으니까요.”
예술인의 보금자리 예총회관 마련
김훈동 회장은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섭렵하고 동시대 예술담론을 다루기 위한 심포지엄을 매년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 수원의 문화예술공간은 물론 예술정책, 예술의 사회적 기능, 예술문화자원, 예술단체 지원정책 등 여러 분야를 다루며 지역문화예술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1년에 1회 당시 주제가 되는 토픽으로 예술인의 담론을 나누는 심포지엄을 개최했어요. 학구적으로 논의해서 예술발전방향을 공동 모색하자는 취지였죠.”김 회장은 12년간의 숨 가쁜 일정을 소개하며 퇴임 소감을 밝혔다.
“회장 역할을 맡으면서 수원예술 발전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저는 처음부터 회장이 감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수원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서울서 직장을 다녔지만, 주소 한번 옮기지 않았어요.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수원예술계에 부족한 문화 인프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수원예술인과 시민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위상을 높여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회장직을 수행했어요.”
이는 척박한 지역문화예술계의 환경과도 일맥상통한다. 서울과 인접한 수원의 지리적 한계와 자생력이 부족한 예술단체(예술인)의 활동이 오랫동안 지속됐기 때문이다.
“수원예술계가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나름의 자리매김을 했지만, 체계적인 인프라 구축이 이뤄지지 않아 시민과의 소통이 쉽지 않았죠. 흔히 공연장이나 전시장에 가면 관객이 없다고 말하기 일쑤인데, 예술의 생산자 단체인 예총이 예술 소비자(시민)를 유인할 수 있는 기획력과 여러 회원단체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해요.”
체계적 문화 인프라 구축
그 결과 김 회장은 각종 문화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열심을 발휘하는 동시에 앞서 언급했던 예총회관 단독건물과 문학인의집 등 공간을 마련했고, 회원 단체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업무 프로세서를 개선하기도 했다.“예총은 회원단체의 연합체이죠. 그래서 회원단체가 잘 돼야 예총 자체가 잘 되는 것이죠. 회원 단체의 자립을 위해 예총이 모든 행정 업무를 처리하기보다는 회원단체가 시청의 행정담당자와 직접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어요. 회원단체가 스스로 사업진행과 정산기능을 활성화시켜야 보다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그는 수원예술사의 기록에도 큰 비중을 두었다. 지난 2010년 ‘수원예총50년사’를 발간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으며, 앞으로 수원예총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이에 힘입어 문인협회와 음악협회, 국악협회도 50년사를 발간했거나 기획하고 있다.
“기록물은 수원예술계를 이끌었던 선배들의 업적을 조명하는 동시에 후배들이 선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스란히 담았어요. 향후 수원이 문화도시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이밖에 ‘수원예술인 100인선’(2005)과 ‘젊은예술인 선집’(2011) 등을 발간해 역량 있는 지역예술인들을 조명하는 사업을 병행했다.
창간호 잡지 1만종 기증
김훈동 회장은 잡지 수집가이기도 하다. 그것도 창간호만 전문으로 수집한다. 한 사람의 취미에서 시작한 잡지 수집은 고스란히 역사가 되고, 인류 문화유산의 토대가 된다. 그는 1967년부터 잡지를 수집했으며, ‘창조’(1948)를 비롯해 ‘가톨릭청년’(1957), ‘농은’(1956), ‘종교계’(1965) 등 1만 여종을 수집했다. 전국에 희귀본이 있다는 정보를 얻으면 한달음에 달려갔던 그가 잡지 전체를 수원박물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거쳐 수집한 잡지를 기증하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여러 대학에서 잡지를 기증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나 언젠가 수원에도 ‘잡지박물관’이 건립될 것이란 믿음에 기증을 결심했어요. 스마트폰이나 여러 영상매체가 대세지만 활자매체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하다고 생각해요. 활자는 꼼꼼히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죠. 내 일생의 분신 같은 잡지를 기증하면서 내 고향에서 예총회장 다운 일을 했다고 자부해요.”
시인이자 칼럼리스트인 김 회장은 금융인 출신이다. 현역시절 농협경기지역 본부장을 역임했다. 조금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나름의 확고한 가치관은 예술인 특유의 성향과도 일맥상통하다.
꾸준한 글쓰기의 산물은 여러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시집 ‘우심’과 ‘억새꽃’, 수필집 ‘내게서도 가죽이 남을까’, 담론집 ‘새콤달콤 예술이야기’, 칼럼집 ‘무엇을 더 구하랴’, ‘무슨 재미로 사나요?’, ‘뭘 배우고 가나’ 등을 펴냈다. 최근에는 수필집 ‘그냥, 지금이 참 좋다’를 통해 명예로운 삶과 예술에 대한 단상을 소박하면서 담백하게 써 내려갔다.
“예술은 관심을 먹고 사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관심을 끄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죠. (저는) 신문지상에 예술 관련 칼럼을 쓰면서 예술인들의 작품세계는 물론 예술 소비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자 했어요.”
수원예술인의 자긍심 높여
김 회장이 수원예총 수장의 자리는 떠나지만, 지역예술계 원로이자 오피니언 리더로서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그는 수원·화성·오산시 협력을 위한 수원시광역행정시민협의회 대표위원장과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을 맡고 있다.
12년이란 긴 시간 동안 수원예총 회장의 길을 걸었지만, 끝내 못 푼 숙제가 그리 편치만은 않다.
“예총회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원이 예술의 도시라면 이름이야 어떻든 신축 건물도 좋고, 리모델링한 기존 건물도 좋고, 보다 반듯한 회관을 건립해 강의실과 공연장 등 전문예술인이 창작의 날개를 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역사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김훈동 수원예총회장이 걸러온 예술의 길은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여러 회원단체와 장르를 결합한 공연·전시 기획, 예총50년사 발간, 예총회관의 운영 등등.
열악한 환경이지만 수원 예술인들의 존재가치를 알리고 그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만큼은 소중한 수원의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