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 [수원의 문화비전] 문화도시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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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798다산쯔


[수원의 문화비전]

문화도시 수원



글 최지연 수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



올해는 지역문화와 관련하여 전기가 마련된 해이다.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개별법으로 정립한 「지역문화진흥법」이 1월에 제정되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문화예술 현장의 지속적인 요구가 있었던 법령이었다.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매번 발의되었음에도 무산되다 이제야 비로소 통과한 것이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의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한 근거를 마련하였고, 지역의 문화진흥기반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지역문화전문인력의 양성, 지역문화실태조사 실시, 지역간 협력 및 지역과 기업간 협력 활동 지원 등을 규정하였다. 또한 지역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문화예술·문화산업·관광·전통·역사·영상 등의 분야별로 문화도시를 지정·지원하는 문화도시조성제도 도입의 근거를 마련하고 지역문화진흥에 관한 중요 시책을 심의·지원하고 지역문화진흥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지역문화재단이나 지역문화예술위원회를 설립·운영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문화진흥법」 규정에 따라 문체부는 문화도시·문화마을 조성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문체부는 이 문화도시·문화마을 사업을 올해는 시범 사업으로 추진하였고 2015년부터 확대할 예정임을 밝혔다. 수원시도 2011년 「수원시 문화도시 조례」 제정 이후 ‘수원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수원SK아트리움’ 건립하며 중앙정부의 「지역문화진흥법」과 문화도시·문화마을 조성 사업에 맞춰 문화도시 조성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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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 혹은 문화정책에서 문화도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벌어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이다.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욕구가 높아진 한편 사회적으로 문화예술이 가진 경제적 잠재력에 주목했다. 국가적으로는 광주 문화중심도시, 전주 전통문화도시, 경주 역사문화도시 등의 국책사업이 추진되었고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도시를 지역의 비전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문화도시는 슬로건으로 혹은 레토릭(rhetoric, 수사학)으로 남아있을 뿐 진정한 문화도시라 할 만한 도시가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화도시가 레토릭(rhetoric, 수사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왜 문화도시를 추구하는 것일까? 문화도시는 예술이 넘쳐나는 도시이기 하지만 단순히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시설과 이벤트가 풍부한, 예술적 행위가 넘쳐나는 도시가 아니다.



문화도시는 궁극적으로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문화적 환경을 통해 높은 삶의 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래서 살고 싶은 도시인 것이다. 즉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것은 문화도시가 문화적 풍요가 넘쳐나는 살기 좋은 도시이기 때문이다.문화도시의 시초는 뛰어난 자연조건이나 역사적 문화유산 등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여 미학적 아름다움, 쾌적함과 편리함을 갖춘 도시민들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문화도시란 용어가 구체적으로 사용된 것은 1970년대 이후 유럽에서 쇠퇴한 산업도시들의 재생을 계획하면서부터이다. 도시재생을 위한 지역개발 프로젝트에 예술가들을 끌어들이고 변화와 혁신의 핵심자원으로 ‘문화’를 활용하였다. 도시에 활력을 가져다줄 새로운 경제모델로 문화산업이 부각되었다. 도시의 이미지 쇄신과 상품화를 위해 도시문화와 지역발전을 연계한 장소마케팅이 강조되었다. 볼로냐, 밀라노 같은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나 세계의 문화수도라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 등이 문화유산을 통해 문화도시로 이름나 있는 반면 문화도시를 논하면서 흔히 사례로 거론되는 스페인의 빌바오, 영국의 리버풀이나 셰필드 등은 도시재생의 과정 속에서재탄생한 것이다.
세계의 유수 문화도시들을 참조하고자 할 때 흔히들 겉으로 두드러지는 특징에만 주목하여 도식적으로 도입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빌바오에서는 단지 랜드마크로서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주목한다. 문화도시를 추구하는 많은 도시가 거창한 문화시설이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건축물을 짓는데 힘을 쏟았다. 에든버러는 프린지 페스티벌을 비롯한 각종 축제로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지역관광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지역 축제를 개회하고 있다. 20년간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Museum)이나 공장지대를 갤러리, 작업실 등이 모여있는 예술특구로 변화시킨 베이징의 다산쯔(大山子)의 사례를 따라 국내의 도시재생 사업에서 수많은 폐건물에서 모습이 바뀐 공방, 아티스트 레지던시 공간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빌바오의 성공은 구겐하임 미술관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문화접근 대중화 프로그램인 문화의 집(Casas de la Cultura)이라는 시민 센터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시행하였다. 시민 센터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민 문화생활의 핵심인 자발적 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 각종 행사들을 개최하였다. 또한 바스크어를 보호하고 바스크의 고고학적 유산을 보존하는 정책을 펴서 문화정체성 확립에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으로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립은 장기간 수립한 치밀한 도시 재개발 전략에 바탕을 둔 것으로 미술관 주변에 대형 호텔, 컨벤션 센터, 공연장 등을 세워 주변 지역의 문화벨트를 형성했던 것이다.
에든버러의 축제는 처음부터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위해 기획된 축제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에든버러 시와 시민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한 공연기획자의 기획으로 공연예술축제가 시작되었다. 점차 이 국제 페스티벌이 알려지면서 공식적인 초청을 받지 못한 공연 팀들이 축제 기간 동안 자생적으로 공연한 것이 프린지 페스티벌로 발전했다. 이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공연 팀들이 몰려왔고 덩달아 관객들도 함께 몰려들면서 축제는 에든버러의 핵심적인 관광자산이 된 것이다.
다산쯔 지구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쇠락한 ‘718연합창’이라 불리는 지역의 한 폐공장에 예술잡지 중심의 서점이 개설되면서 예술지역으로 변신한 곳이다. 다산쯔 주변에 자리잡고 있던 중국명문 ‘중앙미술학원’과 화가들의 집단거주지였던 ‘화지다’로 인해 다산쯔는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이 몰려들 수 있었다. 다산쯔에서 건물을 싼값에 임대해 넓은 작업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에 젊은 예술가들이 관심을 나타냈다. 점차 갤러리와 작업실, 예술출판사, 디자인회사, 광고회사 등이 들어서고 ‘다산쯔 페스티벌’을 계기로 유명해지면서 베이징 시의 지원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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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SK아트리움

문화도시들은 그 지역만의 독특하고 차별적인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개성적이고 특성화된 도시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수원은 역사적 인물인 정조,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 및 화성 행궁,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 등의 뛰어난 역사·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문화적 자원은 문화도시 수원의 밑바탕이 된다. 올해 수원SK아트리움이 개관하고 수원아이파크미술관(가칭)을 건설함에 따라 기존의 박물관과 도서관 등과 더불어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 문화기반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문화적 콘텐츠에서도 수원은 50년이 넘어가는 수원화성문화제를 비롯, 수원화성국제연극제, 수원화성국제음악제 등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수원은 문화도시를 위한 여건들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자원들이 어떻게 현재의 도시의 생활체계와 결합되어 있으며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하고 평가해봐야 한다.
수원의 고유성과 특성을 개발한다고 해서 다른 문화에 폐쇄적이어서는 안 된다. 문화도시에 담기는 문화는 창의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양해야 한다.



문화는 형식이나 규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창의적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수원의 창의인재를 발굴할 뿐만 아니라 젊은 예술가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력들이 수원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문화자원을 갖추고 있어도 명확한 비전을 갖춘 일관된 문화정책이 없으면 자원으로 남을 뿐이다. 이제껏 수원은 문화정책다운 문화정책을 펴오지 못하고 개별적이고 파편적인 사업들을 지속해왔다. 진정한 문화도시로 가기 위해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문화관광정책은 문화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도시의 기본은 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와 문화향수가 일상적으로 충족되는 것이다. 수원의 문화를 산업화하거나 관광화하는 것은 수원시민들의 문화적 욕구가 충족되고 일상의 문화가 충실하게 여무는 바탕 위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문화도시를 지역발전전략 차원으로만 접근해서 경제적 효과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문화가 관광자원이 될 수는 있지만 문화=관광이 아니며 문화=문화관광인 것도 아니다. 문화와 문화관광은 구별되어야 하며 문화를 관광의 자원으로서만 사고하지 않아야 한다. 수원시민이 누리는 문화가 알차게 영글어졌을 때 타 지역의 소비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상품으로 보일 수 있다.
문화도시는 시민들의 참여와 논의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도시의 정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반문화적인 상태에서는 문화도시가 만들어질 수 없다. 문화도시는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문화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 소수의 행정관료에 의해 결정되어 하향 추진하는 문화행정은 튼실한 문화도시를 만들 수 없다. 문화도시를 조성함에 있어도 수원이 지향하는 문화도시는 어떠해야 하는지, 누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속가능한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지자체·예술가·문화전문가·문화재단 같은 문화전문기관뿐만 아니라 수원 문화의 생산과 소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과 시민단체 등이 포함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민주적 거버넌스 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수원은 문화적 잠재력을 갖춘 도시이다. 수원이 가진 인문정신을 바탕으로 문화적 잠재력이 발휘되어 창조적 문화가치를 꽃피울 수 있는 문화도시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최지연은 음악과 예술경영, 사회학을 공부했고,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경기문화재단에서 일했다. 현재는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 연구위원으로 수원학과 수원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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