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9호 [책 나들이] 창의적인 수원문화지도의 모멘텀을 꿈꾸며
창의적인 수원문화지도의 모멘텀을 꿈꾸며
글 김희만 역사학자·문학박사
『경성에서 서울까지』라는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가 횡보 염상섭 씨의 시간여행과 함께, 부제로 ‘근대문학유산을 따라 걷는 도시 에세이’이다. 글발이 좋다. 읽는 재미를 위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러 필자 때문이지만, 다소 내용의 중복이 흠이다. 아울러 지식의 다양성을 더 추구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서울 택리지』(노주석, 2014, 소담출판사)와 『한양, 경성 그리고 서울』(문동석, 2013, 상상박물관) 등을 같이 읽어보면 유익하리라고 추천한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재밌다.
1920년대 경성과 식민지 문화 권력의 이해를 위해 《사랑과 죄》, 《만세전》의 내용을,
1930년대 경성, 근대의 화려한 진창 속에서 탈주하는 청춘들을위해 《삼대》의 내용을,
1940년대 서울에서는 치열한 리얼리스트의 눈으로 본 《효풍》,《두 파산》의 내용을,
1950년대 서울, 전쟁의 긴 그림자에서는 《취우》의 내용을,
1960년대 4·19혁명과 문인의 임종에서는 《임종》의 내용을 무대로 설정했다.
횡보 씨의 시간 여행에 근대문학유산을 배치하여, 경성에서 서울까지 따라 걷게 만든다. 그리 힘들지 않다.
1920년대 경성 풍경을 그린 《사랑과 죄》에는 경성 유람의 명소였던 조선신궁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 경성 관광의 첫 번째 코스가 조선신궁이었으며, 1920년대 중반에 식민지 통치 권력은 도시적 장관을 시각화함으로써 지배의 효과를 일상에 가져왔으며, 세브란스병원도 모티브로 등장한다. 이러한 배경을 횡보는 놓치지 않고 있다. 또한 《만세전》은 1920년대 식민지 조선 문학의 풍경을 치열하게 기록한 역사적 문헌으로 평가하듯이, 이 소설은 도쿄에서 경성에 이르는 여행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도쿄역을 출발하여 고베, 시모노세키, 부산, 김천, 경성에 도착하는 과정을 ‘전근대와 근대’, ‘제국과 식민’, ‘도쿄와 경성’ 사이에 선 개인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1930년대는 소설 《삼대》가 대변해준다. 경성의 만석꾼 집안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삼대가 일제강점기에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경성의 거리 스케치는 현재의 우리를 부럽게 한다. 그 곳에 등장하는 지명을 보면, 홍파동, 북미창정, 수하동, 본정통, 화개동, 안 국 동, 남대문안, 당주 동, 안 동, 삼청동, 소격동, 진고개 등이 거명된다. 경성의 북촌과 남촌, 서촌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공간이다. 북촌은 멸망한 조선의 공간으로, 남촌은 일본인의 활동무대, 서촌은 자주적인 사람들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근대의 탄생을 실감하게 한다. 요즈음 북촌에서 인기 있는 한옥은 일제의 집장사들이 지은 유산이라니 아이러니하다.
1940년대 8·15 해방 후 경성에서 서울로 이름이 바뀐 서울의 거리 풍경은 획기적으로 변모한다. 일본어 간판이 퇴조하고, 미군정 실시로 영어 간판이 속속 등장하면서 크리스마스, 럭키, 댄스홀 같은 영어 간판과 더불어 조선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도 양풍(洋風)이 거세게 불었다. 《효풍》이란 소설은 해방 직후 욕망이 들끓는 진고개를 무대로 한 작품으로, 경요각, 일송정, ××서, 스왈로, 국제극장, 병원, 명동피엑스, 고려각 같은 일대를 무대로 서술하고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이슈로는, ‘최신’ ‘최고’ 유행지 명동과 영어 열풍, “Yes, All right, No만 갖고 통역한 사람도 있었어요”, ‘딸라 외교’와 낙랑클럽, 그리고 ‘적산 가옥’ 등 다양하다. 《두 파산》은 ‘형질 변경’된 광화문 네거리에서 벌어진 자본주의와 돈의 문제를 해방의 기쁨보다는 먹고사는 문제의 절박한 상황 등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1950년대는 소설 《취우》와 한국전쟁을 읽을 수 있다. 한국전쟁 막바지 난리 통의 전쟁 시기를 작품화하였는데, 여기에는 사랑이라는 낭만의 외피를 걸친 공포의 내면을 횡보는 도시의 정경 곳곳에서 기록하고 있다. 기록의 전시물이라고 할 만큼 생생하게 당시의 피폐와 공포를 담아두었다. 이 소설에서는 ‘딸라’로 표출되는 자본의 힘과 진취적인 여성의 원형, 돌아가는 삼각지로 선명하게 복선되는 줄거리, 그리고 외세 고착의 진원지인 용산지역 청산을 위한 노력 등의 글쓰기를 감상할 수 있다.
1960년대 《임종》에는 횡보의 임종을 전후한 짧은 이야기가 우리를 경건하게 한다. 그는 예술원 종신회원이었지만, 경제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그런 연유로 자주 이사를 했다. 원로 문인으로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칼럼 등을 기고하고, 정치권력의 탄압에 저항하고, 4·19혁명이 진행 중일 때 ‘대도로 가는 길’이라는 글을 쓰는 등 한국 문학의 어른, 한국 사회의 원로로 활동하였다. 그의 《임종》은 죽음을 둘러싼 맥락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죽음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둘러싼 상황을 잘 재현해내고 있다. 그의 문학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한국 문학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문학인에게는 염상섭의 시대별 소설을, 여행가나 지리학자에게는 소설가 횡보 씨의 경성에서 서울까지의 시간 여행을, 역사가에게는 근대문학유산을 따라 걷는 도시의 역사를 소상하게 알려주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글쓰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단연 횡보 염상섭이 제공한 소설 덕분일 것이다. 물론 이를 분석하고 해석한 글쓴이들의 노고도 빠뜨릴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 횡보 씨와 같은 문인을 찾게 된다. 요즘 각 지자체에서는 역사와 문화의 폭을 확대할 수 있는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유산의 발굴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자료의 발굴과 가치의 확장은 현재든 미래든 절실할 것이다. “창의적인 수원문화지도의 모멘텀을 꿈꾸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새로운 시각과 창작은 많을수록 좋다. 수원문화지도의 구성 인자 활성화를 위해 “시민 모두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한다. 횡보 염상섭 같은 인물의 발굴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김희만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한국사의 이해』, 『화랑세기를 다시 본다』 등의 공저서와 「수여선의 개통과 사회변화」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최근 인터넷신문 뉴스피크에 ‘헌책방의 인문학’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격주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