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 [담장넘어 1] 음악이 꿈꾸는 곳, 공연장을 탐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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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지크페라인



[담장넘어 1]



음악이 꿈꾸는 곳, 공연장을 탐닉하다



글 민정주 경인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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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드보르작홀

1870년 오스트리아 빈. 카를 성당과 마주보고 있는 새 건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들이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고, 세련된 차림새의 남자들은 서로 악수를 나눈다.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복도와 계단 위에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연주회장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즈음 무대 뒤의 대기실에서는 클라라 슈만이 연주를 앞두고 숨을 고르고 있다. 그 곁을 브람스가 지키고 있다. 30대의 기운생동한 브람스에게 50을 갖 넘긴 클라라는 음악적 동지이자, 평생을 사랑해온 여인이다. 그는 클라라에게 새로 지은 공연장에서의 첫 피아노 리사이틀을 제안했다. 그녀는 기꺼이 응했고, 이제 박수소리와 함께 연주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황금이 부서지는 무지크페라인



1870년 1월 개관한 무지크페라인홀의 풍경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홀은 여러모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연주홀이다. 음향 좋기로, 아름답기로, 역사 깊기로 등등.

우선, 음향에 대해 말하자면, 어느 평론가가 ‘황금이 부서지는 소리’라고 표현했다. 황금이 부서지는 소리를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상상해 보건데, 청량한 파열음에 이어 미세입자들이 공중에서 저마다 반짝거리는 소리가 21초쯤 지속되지 않았을까. 직사각형의 대공연장, 벽과 천장은 회반죽을 바른 벽돌로 마감해 공기가 잘 통하도록 했고, 내부의 의자와 장식물을 모두 목재로 제작했다. 직육면체 형태와 좋은 목재, 잔향을 고려한 바닥 아래 공간은 적절한 반향을 보장했고, 어느 좌석에서든 균질한 음향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이 공연장은 세계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심포니 전용홀이 됐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무지크페라인 무대에 서기 전에는 음악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인 줄 몰랐다”며 극찬했다. 보스턴심포니홀이나 탱글우드 세이지 오자와홀도 이 공연장을 모델로 설계됐다.

이 공연장은 지은 건축가는 ‘테오필 폰 한젠(Theophil von Hansen)’이다. 덴마크에서 태어나 그리스에서 8년 동안 공부한 그는 무지크페라인홀을 지을 때 ‘그리스의 르네상스’라는 자신의 건축적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건물 곳곳에 그리스 건축의 영향이 배어 있다. 대공연장 좌우 벽면에는 32개의 황금 여신상이 발코니석을 떠받치고 있고 상단에는 창문 40개가 조명을 대신한다. 천장에서는 아우구스트 아이젠멩어가 그린 천장 벽화 ‘아폴로와 뮤즈신들’이 내려다본다. 이 공연장에 ‘황금홀’이름이 붙어있는 것은 아주 당연해 보인다.

소공연장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실내악 앙상블의 질감을 청중에게 전하는 데 최적화 돼있다. 클라라 슈만은 연주한 곳이다. 이후 많은 브람스의 작품이 이곳에서 초연됐다. 125년 후인 1937년, 소공연장에는 ‘브람스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주홀이 문을 연 1870년 이후는 물론이고, 앞서 반세기동안 ‘무지크페라인’은오스트리아 음악계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대변했다. 무지크페라인은 공연장 이름이기도 하고, 운영 단체의 명칭이기도 하다. 우리말로 옮기면 ‘음악애호가협회’다. 협회는 시민계층의 성장으로 음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던 시기인 812년 설립됐다. 왕실과 귀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음악이 모두를 위해 연주될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협회는 연주홀과 더불어 음악사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문서보관소와, 국립음악원도 창설했다. 브람스는 이곳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고, 그의 교향곡 2번을 1877년 12월 황금홀에서 초연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밖에도 브람스의 많은 작품들이 이곳에서 초연됐고, 브루크너, 차이코프스키, 말러 등 수 많은 음악가들의 작품이 빛을 발했다.

요한슈트라우스도 황금홀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음악가다. 그가 작곡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새해가 밝으면 어김없이 황금홀에서 연주된다.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의 고정레퍼토리다. 빈 필 신년음악회는 1939년 시작됐고,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됐다. 지금은 매년 전세계 5천만 명이 TV통해 감상한다. 무려 43년동안 빈 필 악장을 역임한 빌리 보스코프스키가 지휘를 겸했고, 그가 은퇴한 뒤에는 로린마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카를로스 클라이비등 수많은 명지휘자들이 이 무대에 섰다.



국내 음악가 중에서도 무지크페라인 무대에 선 연주자가 여럿 있다. 가장 최근에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이 김대진 지휘자와 함께 이곳에서 황금이 부서지는 소리를 울렸다.

오스트리아 빈을 시작으로 수원시향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체코 프라하, 독일 뮌헨을 방문해 연주회를 열었다. 수원시향의 솜씨 좋은 연주와 따뜻한 청중의 반응과 더불어 각 공연장 풍경은 눈여겨 볼만했다.



국내에서는 클래식 음악 연주를 들으러 다니면서도 공연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국내에는 다수의 다목적홀과 소수의 클래식 전용극장이 있다는 것과 대다수의 공연장이 비슷비슷하게 나무재질로 마감된 벽면과 반사판, 바닥으로 구성됐으며, 객석의 높이는 무대보다 높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유럽의 공연장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이게 공연장인가 싶을 만큼 아름답고, 구조는 단순했다. 군더더기 없는 직육면체 안에 무대가 있고, 무대보다 낮은 바닥에 객석이 있다. 연주하는 모습이 안보이고, 소리도 잘 안 들릴 것 같지만 안 해도 될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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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루돌피눔 드보르작홀

세계2차대전의 폭격도 견딘 체코의 자랑, 루돌피눔 드보르작

체코 프라하에서 수원시향이 연주한 곳은 ‘드보르작홀’이다. 이 공연장은 프라하 구시가지의 블타바강을 바라보며 서있는 루돌피눔(Rudolfinum)의 메인홀이다. 1870년대 초, 한 금융회사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공연장 설립을 계획했다. 공개경쟁에서 선발된 건축가 요제프 지테크(Josef Zitek)와 요제프 슐츠(Josef Schultz)가 신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을 세웠다. 1884년 겨울, 완공됐고, 1885년 2월 열린 개관식에 합스부르크가 황태자가 참석했다. 그때부터 이 건물의 이름은 황태자의 이름을 따 ‘루돌피눔(Rudolfinum)’이 됐다. 우리나라의 시간으로 따져보자면, 김옥균의 3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이후 조선이 기울어져 갈 무렵이고, 미국은 1만여 개의 은행과 중소기업이 파산한 공황상태에 빠져있었다. 이 시기에 건립된 루돌피눔은 2차 대전의 폭격도 견뎌내고 지금까지 체코가 자랑하는 연주홀로 남아있다. 브람스가 후원했던 체코의 천재 작곡가 드보르작(Antonin Dvorak)의 이름을 딴 드보르작 홀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주무대이며, 체코의 음악 축제인 ‘프라하의 봄’ 기간 동안 주요 음악회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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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뮌헨 레지덴츠 헤라클래스홀 / 오른쪽 수원SK아트리움



19세기 독일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헤라클래스홀



투어의 마지막 도시였던 뮌헨에서는 ‘헤라클래스 홀’ 무대에 섰다. 옛 바이에른 왕국의 통치자였던 비텔스바흐(Wittelsbach)가문의 본궁 ‘뮌헨 레지덴츠(Munchner Residenz)’안에 있는 연주장이다. 뮌헨 레지덴츠 궁전은 공국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고, 궁극적으로는 바이에른 왕국(1806~1918)의 중심지였다. 통치자들의 저마다의 의견에 따라 주요 예술가들을 임명해 궁전을 바꾸고 확장하는 수세기동안 궁전은 점점 화려해져갔다. 레지덴츠의 건축, 내부 장식과 예술품들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초기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거쳐 신고전 시대를 아우른다. 레지덴츠는 비텔스바흐 왕조의 독특한 취향과 정치적 야망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켜본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연주가 끝난 후 단원들은 성취감과 아쉬움이 한데 뒤섞인 표정으로 유럽의 관객들과 작별인사 를 나누었다.



누군가의 꿈과 음악이 그려질 곳, 수원SK아트리움



열흘 동안 유럽 4개국 투어를 하고 돌아온 수원시향은 또다시 낮선 무대에 섰다. 그냥 무대만 바꿔 선 게 아니라 아예 둥지를 바꿨다. 지난 연말 완성된 ‘수원 SK아트리움’이 수원시립예술단의 새 둥지다. 수원시립교향악단과 수원시립합창단은 창립 30여년만에 숙원하던 전용공연장을 갖게 됐다.

2014년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 천주교수원교구청과 마주보고 있는 새 건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엄마 아빠 손잡고 온 아이들과 새 공연장의 개관을 축하하러 온 수원시민들과, 클래식 음악 애호가 들이 900여 객석을 가득 채웠다. 수원시향은 유럽에서의 감동을 재현했고, 합창단은 노래로 관객들을 웃게 했다. 축하 공연은 한 달 동안 이어졌다.

나라 밖으로는 소치올림픽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이고, 안으로는 운석 사냥꾼들 이야기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있고, 지방선거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었으며, 믿기 어려운 선박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때에 수원에는 새 공연장이 문을 열었다. 황금홀 만큼 화려하지도, 세계최고의 음향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유구한 역사를 말 할 수 도 없다. 이제 막 첫 페이지가 열렸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뻐할 수 있다. 앞으로 이 공연장에서 쓰일 무수한 역사를 우리는 직접 보고, 동참하고, 함께 써내려 갈 수 있다. 이곳에서 음악과 함께 기뻐하고, 음악으로 위로받으며, 훌륭한 음악가를 만나고 음악을 통해 꿈꿀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연주홀들이 음악가들만으로 지금의 역사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미래에 수원 아트리움은 어떤 별명을 얻게 되고, 어떤 사람들이 무대에 설까. 그 별명을 짓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누군가일수도 있고, 그 사람이 자신이 별명을 붙인 공연장의 무대에서 연주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꿈꾸는 곳에서부터 역사는 시작되는 법이다.



민정주는 취미로 가던 공연장을 일삼아 다닌 지 3년째 된 경인일보 문화부기자이다. 클래식, 뮤지컬, 연극 등 각종 공연장을 맴돌며 밥벌이와 취미생활을 동시에 해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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